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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경제기적의 허구.
대한민국의 경제를 전부 박정희가 이루어 낸 거다?? 제대로 된 경제학자에게 다 물어 봐라. 그 말에 동조하는가. 그것은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만들어 낸 허구이다. 경제학자 강기춘의 정권별 경제성적표 (김영삼정권 2년까지)에 따르면 1위: 전두환.노태우정권 각각 12점, 김영삼정권:10점, 박정희: 6점의 이었다. 박정희 경제가 꼴찌였다.
박정희시대 경제지표들 정말 대단하다! 박정희는 정말 통이 컸다 말아먹을 것 확실히 막아먹을려고 덤벼들었다 그래서 않좋은 것들은 죄다 최고기록을 했다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기위해 어떻게 이지경이 되도록 만들어놨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마도 아래의 신기록은 앞으로 누가 대통령을 해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역대최고 박정희시절의 소비자 물가는 평균 년 16.5%의 상승률을 보였고 63년 20%, 1964년 29%를 기록하는 등 60년대 동안 해마다 10% 이상 폭등.1974년 24.3%, 1975년 25.7%, 마지막해인 77년 12.1% 78년 21%(78년에 고추 한근에 1만원이었고, 배추 한포기에 3천원---정말 대단하다) 1979년에는 18.3%(79년에는 유류가격이 59%, 전기요금이 20-30% 인상) 살인적인 물가상승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도 1973년만 빼고 매년 10% 이상의 물가 상승을 기록
[은행대출금리] 60년대 은행대출 금리가 년17.5%-26%였다. 1965년도에는 금리가 년 30%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도 찬양의 대상인가?-노무현.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가 상승률]--연평균땅값상승률 33.1%, 역대최고 63년 기준으로 하여 7년 후 강남의 부동산은 학동이 20배, 압구정동이 25배, 신사동이 50배로 올랐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같은 기간 서울의 중구 신당동은 10배, 용산구 후암동은 7.5배 상승했다. 땅값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326조원이다(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1년 예산이 200조 전후이다 그당시 국민소득 최대 1천불로쳐서 326조돈을 현재 국민소득 1만7천불로 계산하면 계산이 안나온다)
[노동시간, 산업재해, 소득상황] 1. 박정희시절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1.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였다. 1. 피고용인 가운데 1976년 74.9%, 1978년 76.7%가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였다. 즉 소득세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태반의 근로자가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상황이었다) 1. 근로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쫒겨 나든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 ] 속칭 ‘한강의 기적’ 뒤편에서 부의 불균등 분배는 박정희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심화)는 1965년 0.344, 1970년 0.332, 1976년 0.391, 1980년 0.389, 1993년 0.310으로 나타났다. 대개 1960∼70년대를 ‘절대 빈곤의 평등’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박정희 정권 시기에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설비투자비율, 소득분배율, 실업률] 기업의 설비투자비율 11.7% 역대4위 노동소득분배율 43.7% 역대최하위 79년 실업률 17.9% 역대최고
[경제성장률] ⊙ 단순 숫치상으로 전두환이 1위, 박정희 2위, 노태우 3위, 김대중 4위 역대 집권자들의 연평균실질성장률(이하 연평균성장률)은 전두환 9.3%, 박정희 8.5%, 노태우 7.0%, 김대중 6.8% 순으로 단순 수치상으로는 박정희가 2위이다. ⊙ 상대평가에서는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 박정희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3.3% 더 높았으나 대만보다 1.5% 낮았고, 전두환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5.7% 더 높았고 대만보다 0.8% 더 높고, 김대중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4.8% 더 높았고 대만보다 3.7% 더 높았다.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이에 비해 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박정희시대의 경제 박정희가 한국경제의 기반을 닦았다? 차라리 선조가 임진왜란극복의 국방력기반을 닦았다고 하는 것을 믿는게 낫다 박정희가 경제의 기반을 닦았다는 말은 박정희 이후에 이루어진 엄청난 경제적인 성장은 다 박정희가 밑바탕을 잘 닦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것 또한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박정희경제는 처음 5년간은 부정부패이외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고, 6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베트남으로부터 돈이 들어오면서 좋아졌다. 말기에는 또 완전히 망할 정도로 몰락해 가고 있었다. 수치로 표현하면 박정희말기에 박정희경제는 거의 몰락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후일 전두환이 일본에 40억달러구걸하기에 이름) 그 이후의 정권들이 잘했기 때문에 박정희 경제의 후유증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했다고 해야 말이 맞다.
박정희의 마지막 해인 1979년 GNP는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경상수지는 사상최악인 41억5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기름재고는 7일분 밖에 남지 않았고, 소비자 물가상승도 18.3%나 뛰었고, 외환보유고도 바닥이었다.
박정희정권이 들어서고 초기에 박정희가 초능력을 발휘하여 단숨에 뭔가를 이루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전혀 아니다. (경제가 그런 것이 아니기도 하다) 특히 박정희 정권 5년간은 4대의혹사건 등 부정부패를 제외하고는 경제가 특별히 달라진 없었다. 1960년~1964년의 연평균 GNP성장률은 5.5%로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현재, 중국은 7.5-10%, 베트남도 7%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의 경제가 불행중 약간이나마 좋아진 것은 60년대 후반기에 한일협정으로 돈(무상 3억 달라, 차관 2억 달라)이 들어오고 베트남전쟁에 따른 특수로 10억달라 이상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다른 대통령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도 없어도, 그리고 월남특수가 없어도 박정희이상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문제는 박정희 정권유지목적으로 한국민족의 대일청구권을 모조리 포기하는 폭거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 5만 명이 이 5년간 받은 수당은 1억3,000만 달라였다. 당시(60년대) 외화보유고는 3억 달러에도 미달 했으므로 한국외환 보유고의 거의 반에 해당하는 숫자였고, 또한 한국 총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거였다. (그런데 전투수당마저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박정희의 경제가 찬양받아야 할 일이라면 박정희보다 훨씬 더 짧은 기간에 훨씬 더 찬란한 경제를 이루어 낸 독일의 히틀러와, 러시아의 스탈린, 대동강 기적을 이루어 낸 북한의 김일성(지금은 쫄딱 망했지만), 30년 이상 중국의 경제를 년 약 10%의 성장을 이루어 낸 중국의 지도자들은 더욱 찬양을 받아야 하나?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까지 올려 놓은 김대중과 노무현은 무슨 찬양을 해야 하나?? 박정희가 토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두환경제도 있고, 김대중.노무현경제도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박정희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 말도 웃긴다. 100명의 학생 중 꼴지의 학생이 60-70등 하는 것이 쉽나? 10등의 학생이 5등 하는 것이 쉽나? 개방을 하고 국제환경 등이 맞아 떨어지면 박정희가 없어도 경제는 꽃이 핀다... 러시아, 베트남, 인도, 남미의 나라들을 한 번 보시라. 캄보디아는 년 13%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하기도 한다.
싱가폴, 대만, 홍콩, 일본 등은 박정희가 없어도 크게 성장했다. 우리나라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역사를 정략적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가 통뼈인가? 박정희도 초기 5년간은 약 5.5% 정도로 이승만 후기와 비슷했다. 박정희의 경제가 좋아진 것은 60년대 후반기에 한일협정으로 돈(무상 3억 달라, 차관 2억 달라)이 들어오고 베트남전쟁에 따른 특수로 10억 달라 이상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박정희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실적
이승만 12년집권 -15억$적자 67 -> 82
박정희 18년집권 - 233억$적자 82 -> 1,636 세계 4위 외채국 만듬. 죽기전 한국의 석유재고 7일분 남아 있었음. 죽기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섬. 역대 대통령중에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대통령은 김영삼 박정희 뿐 어떻게 해서 박정희의 무능력이 능력으로 미화가 되었는지 참 궁금하다.
전두환 7년집권 + 8억$최초흑자 1,749 -> 4,268 세계 4위 외채를 30억 달러까지 줄임. 박정희 사후 불어닥친 국가부도 위기를 일본에서 40억달러를 구걸해와서 부도를 막았음
노태우 5년집권 - 132억$적자 4,268 -> 7,811
김영삼 5년집권 - 366억$적자 7,811 -> 7,355 무능한 독재산업화세력에 영남의 마지막(부산경남) 양심을 팔어버림. 국고에 39억달러 남기고 물러남. 금융거래불량자(신불자)1997년말..200만. 국가부도로 국가신용도 최대 10단계 하락시킴. 1997년 12월 3일 IMF와 비밀리에 기업매각 헐값계약서 작성함.
김대중 5년집권 + 846억$흑자 7,355 ->12,646 신용불량자 65만 늘어난 2002년 말..265만 기록. 독재산업화 세력이 말아먹은 국가경쟁력 41위ㅡ> 29위 역대최고 기록. BK21사업으로 과학기술경쟁력 28위ㅡ> 12위까지 상승시킴. 무능한 독재산업화세력 세계4위 외채국 만든 한국을 국가부도 걱정없는 1200억 달러 세계 4위 외환보유국 만듬. 무능한 독재산업화세력이 말아먹은 10단계 추락한 국가경쟁력.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국가신용도 최대 10단계 상승시킴. 1999년 9월부로 대한민국을 최초로 순채권국으로 만듬.
대한민국 경제사를 국민에게 안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박정희는 전두환보다 못하며 오히려 김영삼과 동급이다
수치 통계는 (대한민국 통계청 공식기록) 자료출처: KOSIS
경부고속도로의 업적 ? 일본넘들에게 협상금 받아 처먹고 18년동안 통치하면서 그정도도 안했으면 정말 버러지 중에서도 상버러지라고 밖에 말할수 없다
. . . . . . . 박정희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다 -경제학자 최용식씨- 가시적인 실적 위주의 박정희 개발독재야말로 시장 경제를 병들게 한 암세포였다. 나아가 그것은 IMF 금융위기의 뿌리였다 -고려대 총장 이필상씨- (수구)신문을 읽을 때 나는 섬뜩한 느낌이 든다. 보도와 해설을 보면 신흥종교 단체 기관지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한성대 총장-
김재규는 이등박문을 암살한 안중근과 같은 급의 인물이다. 만약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 김정일체제와 같은 암흑의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 최상천-
원본글과 답글은 경찰에서 오늘 노 전대통령 서거당시 경호관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 2009.05.23 토 20:53 영혼에 베인 습관은 변할 수 없는 것! 로 남겼다는건 다는 뜻이지! 것이다. 이다. 른 상상을 사전에 불식시킬 역 알리바이인 것이다. 인 것이다.
방어했죠! 로 이동한 거예요! 요!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몽고인이 아닌 이상 300미터 밖의 사람을 보고 사람이 지나간다라 말하지는 않 지! 가능하지! 첫째 부엉이 바위의 구조는 뒷편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한쪽면으로만 투신이 가능한 구조. 서있는 경호원은 직분상 라면 뒷쪽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 다음 그 자리에 앉아 책한권을 읽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야! 없는 것! 어! 정리하자면 데 보고만 있었다면 않나?" 어째 일제시대부터 우매한 대한민국 국민들 쉽게 속여가며 권력을 유지해오다 보니
는 시간 = 20분? 절대 불가능 하지! 13분이야! 지! 더 간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줄께!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렇게 발표했지! 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유서를 처음 발견했다." 박모비서관 이었어!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이동시간이 빨랐던 것!) 관은 뭐하는 새낀데? 터 부터 확인하나? 아닌가? 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부터 확인해? 다시 현장으로 이동해 볼까? 에 있다'고 보고했어! 세영병원으로 가보지! 까? 후후후~ 범인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줄 아는 놈이었지만 법의학 상식이 부족한 놈이었어! 경찰은 상의가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졌을 것이라 말했어! 여태까지 내가 올렸던 모든 추론들을 종합해 볼 때 가 되어야 해! 분명치가 않아! 도 결론을 내릴 수 없어! 개판. 켜야 해! ?
추리는 상상이 아니라 검증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인과론이야! 하는 문제야! (그것도 사인이 두부손상인데 말이야) 뼈가 다 절단이 났을텐데 이고 리를 노리고 있었는지 ! 언했어! 다면 말이 되지!
무기력하고 무지하며 가증스런 인간들. 이다. 상 되어야지 명복은 무슨 얼어죽을 다. 모든 추측을 미루고서 라도 본래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이다 . 살이 아니라고 알려두어라!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자가 죽어도 이토록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지는 않는다. . 무기력한거 착한거 아니다. 다. 다. 이 다 내글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걱정마라!
네! 대한민국엔 범죄심리학자가 단 한명도 없단 말인가? 고 보고했다고 로 올라가서 뛰어내렸다고? 고 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얘기이고, 했다는건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돼! 가자 말했다면 미 중대한 경호과실이지! 이 트릭을 깨주지! 기 때문에 는 것이지! 이 있냐고 물었을까? 바랄 때 어디까지 연결되고 누구까지 엮여있니? 각했던거야! 2009.05.27 수 00:27 내가 얘기했지? 자간게 아니라 왜 치나? 넌 도대체 어떻게 알았던 것이니? 이 안돼! 고 있었던거야! 지 못했거든! 가 힘이 들었을까? 못하고,피를 많이 뽑지 못했던거야!
MB가 지금까지 해온 짓거리들을 보면 유서의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논란이 되는 것도 난 충분히 사실일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언론통제로 많은 분들이 알지 못하는것 같아 아쉽다. 일부언론에서는 헤프닝이라고도 하지만,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를 했었던 내용이므로, 판단은 읽는 분들이 하기 바란다. <(펌)노대통령 유서 진본>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경찰 발표가 있기 전에 진본 유서를 먼저 보도한 신문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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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2 or 13일에 아고라에 쓰여졌던
미네르바 추정의 글 3편 입니다. 조회수가 올라가자 지워지긴 했지만 미네르바의 글로 보입니다. 많은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자극적인 빨간 글씨들과 .. 을 자주 사용하는걸로 봐서 진짜 미네르바 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써놓은 글은 역시 적라나라 현재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좋은글도 맘편히 쓰고,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빨리되길 기원해 봅니다. ---------------------------------------------------------------------------------------------- 내가 그렇게 말했지.. 많이 달라질거야...
다음 아고라의 세일러님의
경제학과 역사 - 한국은 어디로... 를 스크랩하였습니다. 간략한 경제학 역사에 대하여 나오는데, 뉴딜이 어떤의미인지 신자유주의란 어떤것인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명쾌하게 정리된 글입니다. 쥐박이가 외치는 뉴딜은 뉴딜을 모르는 어린얘기가 이름만 같다 우기는 것임을 알수 있고, 쥐박이가 미는 신자유주의 이거 아주 좋지 않은 제도임을 이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시간나실때 필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뉴딜 : 자본주의의 시스템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중산층을 키우기 위한 정책 신자유주의 : 국가가 자본주의에 영향력을 미쳐야 부작용을 막고, 지속될수 있는 것임을 모른척하고 기득권만을 위한 자본주의 정책만을 뽑아내는것 라고 제맘대로 정리하였습니다. 세일러님의 글은 아래 주소에 가시면 쭉 보실수 있습니다. http://agora.media.daum.net/profile/list?key=WWrolAUSdZE0&group_id=1 ------------------------------------------------------------------------- 안녕하세요? 이 글에서는 역사의 맥락 속에서 경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역사의 맥락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주도하는 것은 ‘산업자본가’ 그룹입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언제 태어났을까요? 정답은 산업혁명 이후부터입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본격화된 산업혁명은 ‘산업자본가’(부르죠아)라는 신흥세력을 낳습니다. 당시 사회 내에 새로이 생겨난 이 신흥세력들은 당시의 기득권세력들에게 탄압을 받습니다. 당시의 기득권세력은 절대왕정 + 상업자본가 + 교회, 의 연합세력입니다. 이들은 중상주의와 신의 섭리, 라는 탄탄한 이론적, 사상적 배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절대왕정은 말합니다: 국가의 부는 금의 양으로 결정된다, 이걸 국가 내에 쌓으려면 금이 나가는 걸 통제하고, 금이 들어오는 걸 권장해야 한다. 즉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왕정 체제 하의 정치 세력, 이들과 결탁한 상업자본가들입니다. 상업자본가들에 도전하는 신흥 산업자본가들은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억압 당합니다) 교회는 말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탐욕스런 존재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인간의 탐욕에 그대로 맡겨두면 세상은 타락하고 만다. 신의 섭리에 따라 세상을 통제해야 한다. (그 결과 이익을 보는 것은 성직자 계급입니다) 역사의 전면에 새로이 등장한 산업자본가라는 신흥세력은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경제분야에서 역량을 계속 강화하고 있었지만, 굳건하게 자리잡은 기득권세력의 논리와 사상체계에 맞설 수 있는 대항이론과 사상체계가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뭔가 상당히 억울하긴 한데, 뭐라고 따져야 될 지 모르겠다, 는 상태였습니다. 1776년, 영국의 관세청에 근무하던 한 직원이 국부론이라는 책을 써냅니다. 국가의 부는 쌓아놓은 금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맞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인간의 탐욕에 맡겨놓는 것이 좋다, 각 개인이 자기의 ‘이기심’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서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위해 최적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 이론적 배경 설명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 이에 따른 가격의 자동조절 기능, 즉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설명합니다. 그 논리적 결과는 국가의 경제 활동에 대한 개입(보유한 금의 양을 늘리려는)은 불필요한 것이며, 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이 관세청 직원은 연말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 연회장에 갔더니 영국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 영국 내의 모든 산업자본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연회장에 들어갔더니 수상을 비롯하여 모두가 기립을 합니다. 부담스러운 직원은 말합니다. “여러분, 왜 이러십니까? 부디 앉아주십시오.” 수상이 말합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 먼저 앉지 않으시는데, 어찌 저희들이 먼저 앉겠습니까?” 애덤 스미스가 쓴, 이 한 권의 책으로 전 세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산업자본가 세력은 이제 자신들만의 대항논리와 사상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는 중상주의 사상체계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중상주의와 기득권 세력을 아울러 ‘구체제’라고 몰아부칩니다. 이제 상업자본가들과 절대왕정, 교회가 주도하던 ‘중상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산업자본가들과 새로운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새로운 세상의 규범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교회 조차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의 연관성을 말하면서 산업자본가들의 논리에 발을 맞추게 됩니다. 이제 사회에는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굳건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애덤 스미스를 ‘스승’이라 하고, 국부론을 금과옥조로 여겼지만, 애써 한 가지 사실은 모른 체 합니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실패’에 대해 얘기합니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조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장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완전 경쟁’을 얘기하려면 출발선이 동일해야 한다, 출발선이 동일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배려가 필요하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다시는 동일한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도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안에서 ‘시장의 실패’와 ‘국가 개입의 필요성’,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자본가 세력들은 이 부분은 애써 모른 체 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야수’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19세기에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8시간까지도 노동에 내몰립니다. 그렇게 일해도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고 간신히 연명할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부녀자, 노약자, 어린아이들도 최소한의 먹을 거리를 얻기 위해 동일한 노동조건에 내몰립니다. 공장의 노동환경은 열악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졸린 눈을 비비며 야간 노동에 내몰렸고, 공장에서의 사고사, 과로사로 죽어갔으며, 질병으로 쓰러져 갔습니다. 사회에는 소요사태들이 벌어집니다.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어 진압됩니다. 사회에는 ‘노동자’라는 그룹이 생겼습니다. 이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라는 생각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득권 세력이 내세우는 논리에 무어라고 반박해야 할 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보다 100년 전, 18세기에 산업자본가들이 역사의 전면에 새로이 등장한 신흥세력이던 시절, 그들은 중상주의를 배경으로 한 기득권세력의 논리와 사상체계, 이를 기반으로 한 탄압에 대해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산업자본가들은 기득권세력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빈털터리 사내가 대영제국 도서관에서 필사적으로 집필작업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상황은 열악했고 도서관에서 무료로 책을 볼 수 없었다면, 집필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867년, ‘자본론’이 출간됩니다. 이제 노동자 그룹은 기득권 세력에 맞설 수 있는 대항 논리와 자신들만의 사상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후 세상에는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태어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립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된다, 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예언대로 영국, 미국에서 계속 금융공황이 발생합니다. 반면 그의 이론을 기반으로 성립한 소비에트 연방은 초기에 빠른 경제 발전을 보입니다. 이에 선택을 망설이던 많은 국가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기 시작합니다. 산업자본가 세력은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계속해서 발생했던 금융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본질적인 변화가 한 가지 생겼습니다. 그것은 여러 번 반복된 금융공황의 결과,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에 예속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대다수 제조업의 소유자는 은행자본입니다. 이제 세계의 절반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고, 세상은 양 진영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경쟁자의 존재가 거슬리긴 하지만, 경쟁자가 존재할 때 자기 자신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 진리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주의와의 경쟁으로 자본주의도 훨씬 건강해집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기여한 책일 것입니다. 경쟁자의 존재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는 ‘야수’적인 탐욕을 절제하기 시작합니다. 사회주의의 장점을 적극 흡수하여 ‘수정자본주의 체제’로 나아갑니다. 유럽에선 사회민주주의가 자리잡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뉴딜정신’에 입각한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들이 취해집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말하는 뉴딜정신이란 어떤 것일까요? 뉴딜의 공식명칭은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입니다. 결코 토목공사 사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경제 시스템을 자유 방임에서 국가 개입으로 바꾸겠다는 것, 소득세 증세를 통해 사회의 부를 재분배하겠다는 정책, 이를 통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미국을 중산층 중심 사회로 만들겠다는 정책 등등 이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지나치게 자신의 부를 늘리려고 하면 안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당대의 독점 기업가들이 보이던 지나친 탐욕을 자제시키고 노동자들의 권리(노동조합의 강화를 비롯한)를 강화시킵니다. 추구하는 방향은, 자본의 지나친 탐욕을 억제시키는 것, ‘야수’ 자본주의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뉴딜 정책은 사회주의의 강점을 적극 수용한 것들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부의 재분배, 노동자들의 권리 강화 등등… 뉴딜 정책은 결코 토목공사가 아닙니다. 현 정부가 취하는 일련의 경제정책은 뉴딜 정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뉴딜정책과 정반대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신에 입각한 개혁의 결과로, 미국 내의 자본주의 체제는 안정감을 찾게 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 간의 체제 대결이 미국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뉴딜 정신에 입각한 일련의 경제 개혁 작업 이후 미국은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2차 대전 이후 1973년에 석유파동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30년 가까운 기간이, 미국 경제 역사에서 최고의 성장률과 역동성을 보인 황금기였습니다. 양 진영간의 체제 대결에서 자본주의 진영의 맹주가 된 미국은 이제 세계 경제 체제 문제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때까지도 양 진영간의 체제 대결에서 제 3세계그룹들이 보기에는, 사회주의 쪽이 좋아보였습니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 3세계에서 계속해서 공산 혁명이 일어나고 그 결과 사회주의 체제가 채택됩니다. 이에 놀란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 제 3세계 국가들이 선망하게 될 ‘성공 모델’ 국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 계획은 1960년 등장한 케네디 정권에 의해 실행에 옮겨집니다. 그들은 대상국가를 고를 때, 체제 대결의 상징성을 갖춘 곳, 미국이 이미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어서 미국의 가치체계를 보급할 수 있는 곳을 고릅니다. 그 대상 국가의 리더십은 ‘군부’가 적합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South Corea 를 대상국가로 선정합니다. (월트 로스토우의 ‘근대화 이론’, 1959년 ‘(미국)대통령을 위한 군사 원조계획 검토위원회’의 보고서 내용) 이후 미국은 남한에 각종 유무상 원조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유도합니다. 이미 미국 경제와 단단히 묶여 있는 일본 경제에 한국 경제를 연결시킴으로써, 미국 중심의 경제권으로 확실하게 편입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게 되고, 이는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예속되는 시발점이 됩니다. 양 진영 간의 체제 대결이 이루어지던 기간(동서 냉전 기간)이 제 3세계 국가들에게는 가장 살기 좋았던 시절입니다. 체제 대결로 인하여 자본의 탐욕이 억제되던 이 기간에, 제 3세계는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양 진영 간의 체제 대결에서 사회주의 진영이 명백하게 몰락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변화하게 됩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1992년이었지만, 1980년 무렵이 되면, 사실상 이미 체제 경쟁은 끝난 상태였습니다. 1980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가 축하연을 벌인 자리에서, 공화당원들은 모두 애덤 스미스의 얼굴이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레이건! 을 연호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의 탐욕을 억제하던 뉴딜 정신과 그에 따른 경제 개혁, 경제 제도들은 공격받게 되고, 이제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이론이 새로이 등장합니다. '신자유주의’ 이론은 애덤 스미스의 계승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이들도 역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 안에서 ‘시장의 실패’와 ‘국가 개입의 필요성’,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했다는 사실은 모른 체 합니다. 그들은 시장의 효율성, 자율성만을 강조하고 국가는 경제 개입에서 손을 떼라고 말합니다.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기에 ‘신자유주의학파’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시카고학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자본이 마음 놓고 ‘탐욕’을 부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본의 탐욕은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80년대 초반부터 제 3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경제 위기에 내몰립니다. 이후 이들 나라에 IMF는 구제금융을 하고, 일련의 경제개혁조치들을 권고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미국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의 ‘성공 모델’ 국가로 육성되었던 한국 경제도 1998년 외환위기를 겪습니다. 미국에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오만한 어조로 ‘역사의 종언’을 선언합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에 이르러 역사의 발전은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인간 이성이 도달한 역사의 필연이며, 최종 종착지이며, 완전무결한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사조가 위세를 떨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를 조기에 채택한 미국과 영국이 높은 경제성장을 보인 반면, 사회민주주의를 강화했던 프랑스, 독일의 경제는 정체상태를 보입니다.
과도한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영국병’을 앓고 있다고 얘기되던 영국 경제가 신자유주의(대처리즘)를 채택하면서 높은 경제 성장을 보임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우월성은 객관적으로도 입증된 듯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신자유주의 사조와 그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제도의 개편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갑니다.
우리 나라도 98년 외환위기의 결과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제도를 채택해야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했던 유럽 대륙도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면서 우경화 경향을 보입니다. 프랑스에서도 우파인 사르코지가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최종 승리합니다. 이제 공산권은 완전히 몰락해버렸고, 자본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 사조에 의해 평정된 듯이 보였습니다. 그에 기반한 경제 제도의 개편이 가져온 결과는 어땠을까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사회의 양극화로 전세계적으로 중산층이 몰락했습니다. 사회보장제도의 약화로 빈곤층은 비참한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세상은 다시 ‘야수’ 자본주의 시대가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애덤 스미스가 21세기의 세계를 본다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18세기의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에 기반한 과도한 국가의 개입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국부론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의 경제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게 된다면, 그가 이미 국부론에서 얘기했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 개입의 필요성’,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이론 투쟁에 나섰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2007년, 미국에서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위기는 대공황으로 발전할 지도 모릅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이룩된 고성장, 신경제의 성과라는 것이 사실은 자산 버블에 기반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후쿠야마가 오만하게 선언한 ‘역사의 종언’에 대해 마르크스는 씨익 웃으며, “이 보게, 젊은 친구, 역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라네”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은 최소한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패권국가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패권국가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야수’ 자본주의의 탐욕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계속 방치하면 ‘자본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당선자가 ‘새로운 뉴딜 정신’을 얘기하는 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미국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의 ‘성공 모델’ 국가로 육성되었던 한국은,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판세, 패권국가 미국의 의도를 잘 읽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한국의 봐라, 한국이라는 모델이 있지 않느냐, 너희도 열심히 하면 된다, 왜 열심히 할 생각은 않고 시스템 탓을 하느냐, 라고 말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미국의 의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의 의도는 이제 더 이상 신자유주의로 계속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맹렬히 반대하며 ‘뉴딜 정신’의 회복을 부르짖던 폴 크루그먼이 200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은 진작에 방향을 틀었는데, 미국이 애써 육성했던 성공 모델 국가가 미국의 의도를 제 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계속 가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자본의 탐욕)를 극단까지 밀어부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진작에 방향을 틀었는데, 우리 한국은 계속해서 극단으로 치달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애써 키운 성공 사례가 망가질까 두려운 미국이, 다시 구체적으로 코치하겠다고 나서는 사태에 이르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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